▲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난해 12월8일 용접작업을 하던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이후 11개월 동안 가족들의 극진한 간호와 치료가 계속됐지만 고 김도영(사망 당시 59세)씨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이달 1일 숨졌다. 14일 고인이 생을 마감한 지 13일이 지났지만 가족들은 그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매일노동뉴스>가 고인의 유가족 이야기를 들었다.

화장터 가던 운구차 돌려
“너무 억울해서 도저히 화장터로 못 가겠더라고…”

고인의 아내 김정희(가명)씨는 이달 3일 화장터로 향하던 운구차를 대우조선해양 거제조선소로 돌렸다. 친인척 30여명이 발인을 위해 운구차를 같이 탔다.

“아직 사장님한테 사과도 못 받았고, 산재도 인정이 안 되고, 내가 억울해서 안 되겠으니까 사장님한테 왜 이 사람이 이렇게 가야 하는지 물어라도 보려고 했어요.”

김씨가 당시 기억을 더듬어 말을 꺼냈다. 그의 남편은 일을 하다 발생한 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졌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회사에 간병인이라도 붙여 달라고, 병원비라도 좀 지원해 달라고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를 안 받아 줘요. 우리 딸내미가 울고불고하면서 부탁했는데…. 지나가던 개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태도에, 너무 억울한 거예요.” 냉담한 회사 반응은 그가 난생처음 농성을 시작한 이유였다. 사장은 장례식장에 조문 한 번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하청업체 ㅁ사 사장의 연락처를 알게 되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소 정문 앞 농성을 시작한 뒤다. 하청업체 사장은 결국 고인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사과했다.

“감전 정황 명확한데, 산재 불승인” 주장

정희씨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산재로 인정받은 것은 화상뿐이었다. 의식불명과 관련한 허혈성저산소뇌병증, 상세불명의 급성 심근경색증, 인공소생술에 성공한 심장정지 등은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불복해 심사청구를 했지만 공단의 결정은 같았다.

산재 불승인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안전보건공단의 “감전 가능성이 낮다”는 사고 사고조사 의견서였다. 안전보건공단은 기술적 검토를 통해 이동식 조명이나 용접 전류에 의한 감전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판단했다. 용접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질식도 한쪽면이 전체 개방돼 있어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이를 토대로 근로복지공단 자문의는 “재해경위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족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희씨는 “(화상 수술한 의사한테) 어째서 감전이냐 물었더니 ‘화상을 입으면 살결이 타는데, 남편 분은 뼈가 타서 녹아내렸다’며 그게 증거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달 5일 고인이 화상치료를 받던 베스티안부산병원 진단서에는 “감전에 의한 쇼크”가 병명에 담겼다.

“감전 가능성 낮다고 발생 가능성 0%는 아냐”

사고 직후 방문한 대우병원의 응급실 임상기록 일지와 경상대병원의 진료기록 일지에는 각각 “440볼트에 감전되신 분” “440볼트에 감전이 된 것 추정”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임상·진료기록 일지가 재해자와 함께 온 관리자나 동료의 증언에 기초한 것이라도 의사가 감전 가능성 자체를 부정한 적이 없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승인 과정에서 이런 진료기록보다 안전보건공단의 사고조사 의견서를 더 신뢰했다.

김승재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웅비)는 “산재는 업무상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인데 안전보건공단이 형사처벌 여부를 판단할 목적으로 작성한 사고조사 의견서만 보고 이런 판단을 내렸다”며 “근로복지공단의 경우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현장에 방문해 인과관계를 살피고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 노무사는 “사고조사 조사의견서에는 감전·질식의 위험성도 낮다는데 낮은 확률이라고 해서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노동계쪽은 질식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재해자와 같은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는 하청노동자는 “이산화탄소가 공기보다 무거워 아래로 깔린다”며 “고인처럼 옆으로 누운 채 고개를 돌려 약간 위를 보고 작업을 하는 경우 머리가 거의 바닥면에 위치해서 이산화탄소를 마시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어떻게 감전이 발생했는지를 규명하지 못했다고 감전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며 “노동자는 뼈가 까맣게 변할 정도의 상처를 입었는데, 사고현장 조사만으로 감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산재 인정 전까지 장례 미뤄”
노동부, 사고 재조사 돌입

남편의 사고 이후 정희씨와 딸은 모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편이 살던 조선소 인근 원룸에서 머물고 있다. 하청업체의 사과를 받은 뒤 조선소 앞 농성은 끝냈지만 산재 승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장례를 미루기로 했다. 감전이 인정되지 않으면 부검도 할 생각이다.

고용노동부는 지회와 유가족의 문제제기로 사고 재조사를 시작한 상태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안전보건공단의 역할은 재해의 기술적·공학적 소견을 밝히는 것”이라며 “본 사안에 대해 노동부 재조사가 시작됐으니 안전보건공단도 필요한 조사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의학적 소견상 감전이라는 의견이 담긴 자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료도 있었고 안전보건공단이 현장검증 후 판단한 내용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며 “유족이 추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재조사를 시작했으니 조사 결과가 나온 뒤 (이 건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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